감리교신앙

세계는 나의 교구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치며
평생을 복음 전도에 힘쓴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존 웨슬리(Jhon Wesley)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1703년 6월 28일 영국의 한 작은 마을 엡웟이란 곳에서, 영국국교회의 목사이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와 어머니 수잔나(Susanna) 사이의 19남매 중 15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유명한 찬송가 작가인 찰스 웨슬리는 그의 동생으로 18번째였다.
웨슬리는 엄격하고 철저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는데, 규칙적인 신앙생활의 습관도 유년기부터 체득된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 수잔나 부인은 가난 속에서도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열심이었고 규칙과 질서를 강조했으며
절제와 검소가 몸에 배이도록 양육했다. 이렇듯 존 웨슬리가 후에 위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그의 어머니의 단호한 기질과 교육의 영향이 있었다.

다섯 살 때 한 밤중에 발생한 목사관의 화재사건에서 존은 기적적으로 무사히 구출되었고,
수잔나 부인은 생전에 그 밤의 일을 잊을 수 없어 항상 존을 '타는 불에서 끄집어낸 부지깽이'
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일을 시키기 위해 그를 구출하셨다는 섭리와 소명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존은 그 후 성장하여 옥스포드(Oxford)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며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유명한 종교 모임인 신성 클럽(Holy Club)을 결성하여 이끌었다. 동생 찰스 웨슬리와 몇몇 친구들과 함께 1729년 조직한 이 모임에서 그들은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까지 믿고 외우는 정통 신앙과 박애주의, 금욕과 경건 생활의 실천 등 엄격한 생활습관을 형성하여 지켰고, 사람들이 이 신성 클럽을 가리켜 '규칙벌레','성경클럽', 규칙주의자 (Methodist)'등의 별명으로 부르게 되면서 후일에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하게 되었다.

15년 동안 옥스퍼드에서 학생 및 조수로 생활을 하던 웨슬리는 주님을 위하여 좀 더 열성 있고 희생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1735년 식민지 교구 인디언을 위한 선교사로서 자원하여 미국 조지아 주로 가서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선교 활동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2년 후에 웨슬리는 깊은 환멸에 젖어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당시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인디언을 개종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오! 나를 개종시켜 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과연 나는 스스로 무엇을 배웠는가? 아,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겠다고 미국에 온 내가, 결코 하나님께 개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했다.”

이토록 신앙의 침체에 깊이 빠져 있던 그에게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 동부의 올더스게잇 거리에
서 열린 모라비아 교도의 집회 참석은 뜨거운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거기서
누군가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웨슬리는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의지해
왔던 정통적인 신념과 자비로운 선행, 종교적인 열정이 아닌,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신뢰함
으로써만 얻는 구원의 감격을 비로소 체험하게 된다.

당시 35세였던 웨슬리는 이 때부터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설교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복음을 전했는데, 1739년 4월2일 브리스톨(Bristol)에서의 첫 노천 전도 이래 50여 년간
그는 매 주 열 다섯 번 설교하며 3,4백리를 여행하였다고 한다.

웨슬리는 찬송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당시의 영국교회의 성가가 옥외 대중용으로는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많은 찬송을 지었는데, 특히 찰스 웨슬리는 6,500여 곡 이상의 찬송시를 남겼다. 웨슬리 형제는 해마다 찬송가를 발행하였으며, 덕분에 감리교인은 노래 잘하기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감리회는 1930년 제1회 총회에서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을 지난 1997년 새롭게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이 교리적 선언은 우리교회뿐만 아니라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도 애용되어 왔다.
이러한 교리적 선언은 앞으로도 감리회의 역사적 선언으로 계속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삶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신앙고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감리회 신앙고백'을 제정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교리적 선언(1930년)
1.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시며, 온 인류의 아버지시요, 모든 선과 미와 애와 진의 근원이 되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으며
2.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사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사 우리의 지도와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신을 믿으며
4. 우리는 사랑과 기도의 생활을 믿으며, 죄를 용서하심과 모든 요구에 넉넉하신 은혜를 믿으며
5.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실행의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으며
6. 우리는 살아계신 주 안에서 하나이 된 모든 사람들이 예배와 봉사를 목적하여 단결한 교회를 믿으며
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으며
8. 우리는 의의 최후승리와 영생을 믿노라. 아멘.
감리회 신앙고백(1997년)
1. 우리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2.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승천하심으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며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4.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도리와 신앙생활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음을 믿습니다.
6.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7. 우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나누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형제됨을 믿습니다.
감리회 표식